#2 Resistance.

 


그동안 숨겨져 왔던 진실이라던가 우리의 현실.
우리의 자화상을 스스로 볼 수있게 된 것 같다.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뜨지못했던 눈.
우리가 그 눈을 뜨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걸린것은 전혀 잘못된것이 아니다.
철저한 중앙집권과 권력일원화의 사회속에서 한민족은 반만년역사를 지내오지않았던가.

잠자고 있던 유럽이 몽골과의 전쟁으로 한차례 깨어나고, 아랍의 영향으로 르네상스를 일구어 마침내 권력의 다원화를 이루어내는 동안 우리는 마치 동면에 들어간 곰처럼.

일제에 의한 역사의 단절, 그리고 외압에 의한 민족분열에 이은 동족상잔의 비극과 국토 황폐화 이후 우리는 깨어나는 듯 했으나.
그렇다, 우리는 깨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권력의 철저한 연기와 언론의 눈가림에 그저 그런줄로만 알았다.

결국 껍데기만 바뀌었을뿐 우리의 속은 여전히 과거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고, 그 결과들이 현상으로 나타남에 따라 이제서야 소수의 국민들이 눈을뜨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이 권력이라는 것은 힘과 장막으로 이 변화의 분기점을 끊어내려 할것인데.

과연 지난 시간들에 견주어 지금만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가 있었을까. 국민이 알려고 하면 알려고 할수록 그들의 입은 더 냉철하고 객관적이어야 하겠지만 권력은 그들에게 재갈을 물렸고 입은 자아를 잃었다.

결국 국민이 공부해야한다. 그 모든 거짓부렁과 이런 시기를 이용해 유언비어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그 모든 껍데기들을 넘어 올바로 보려면.
우리가 똑바로 볼 줄 알아야, 그래야만 입을 열고 무언가 움직일 자격이 생기는것이다.

慧眼 [혜안]을 가지려면, 우리는 무지해서는 안된다. 무지로부터의 비판과 주장은 똑같은 껍데기의 반복일 뿐이며 결국은 편가르기일 뿐이고 그는 모든 권력이 원하는 바이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진실은 내 안에서부터.
국민이 공부해야 나라가 변한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우리모두 불가능한 꿈을꾸자, 그러나 리얼리스트가 되자.
제 3의 눈, 혜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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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자녀인가 배우자인가 동료인가 또는 '나'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나로부터의 당신인가 그 누군가로부터의 당신인가 또는 온전히 당신인가.

 

인생은 가면극이었던가.

그 수많은 가면들을 과연 우리는 동시에 쓸 수 있는 것인가.

 

지금 나는 어떤 가면을 써야하는가.

그 전에 나라는 가면을 쓸 자격은 있는것인가.

 

부모이기전에 당신의 남자, 그 이전에 그네들의 아들, 그리고 그 모든것들의 이전에 나로써의 나.

결국 내가 나를 알아야, 그로부터 오롯이 나를 추구할 수 있어야 좋은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의 성립.

그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기전에 나에게 좋은 '나'이자는 지독한 메아리의 반복.

 

온전한 '나'일 수 있어야, 내안에 견고한 나만의 방이 있어야

온전한 당신을, 내안에 당신의 방을 만들 수 있는게 아닌가.

 

온전한 내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그리고 그 우리가 그 모든것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깊은 성찰로부터, 느릴수는 있으나 오롯한 우리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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